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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문학

정강현 기자의 문학사이 ④ 소설가 김도언, 시인으로 망명하다


김도언.
시는 쓸모 없는 짓이다. 밥벌이가 다급한 사람들은 시 없이도 잘도 산다. 하지만 알아야 한다. 시 없는 세상도 돌아는 가겠으나, 인간의 정신은 그 윤기를 점점 잃어갈 것이다. 그러니 누군가는 계속해서 쓸모 없는 짓에 몰두해야 한다. 우리는 그들을 시인이라 부른다.

 어떤 신예 시인을 소개하기 위해 이런 서론을 풀었다. 신인치곤 나이가 적잖다. 1972년생이니까 올해로 마흔 되시겠다. 이름은 김도언. 맞다. 우리가 아는 그 소설가다. 9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악취미들』『랑의 사태』등으로 주목 받은 13년차 작가. 지난해 장편 『꺼져라, 비둘기』로 제6회 허균문학작가상을 수상한 그 소설가.

 그가 최근 시인 명찰을 달았다. 계간 ‘시인세계’의 신인 공모를 통해서다. 당선 소감이 비장하다. “시로 망명을 신청했다. 이것은 귀화이기도 하고 전향이기도 하다.” 무릇 마흔이란 어떤 일에도 미혹되지 않는 법. 불혹(不惑)의 이 소설가는 어째서 시에 홀리고 말았을까.

 전향 이유는 이랬다. “소설은 문화상품으로 통용되면서 순수성을 잃었다. 순전한 문학의 본향, 시로 망명한 까닭이다.” 그러니까 그는 자본주의적 의미에서 ‘쓸모’ 투성이인 소설에 불편함을 느꼈다. 쓸모 있는 소설의 나라로부터 달아나려는 그에게 쓸모 없는 시의 나라로의 망명은 “불가피한 어떤 것”이었을 테다.

 남는 건 망명의 자격이다. 그가 시의 나라에 제출한 시를 살핀다. 등단작 ‘당신’의 일부다. ‘당신은 지구에서 가장 친절한 사람의 목소리를 갖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 심장에 그어진 파문 때문에 당신은 오랫동안 잠들지 못했다. (…)’

 이것은 당신의 이야기다. 시가 지목한 당신은 어머니일 수도, 아내일 수도, 누이일 수도 있다. 평균적 여성의 수난사를 서사와 감각을 버무려 노래하고 있다. ‘심장에 그어진 파문’이란 시어에 여성적 삶의 응어리가 맺혀있다.

 이 시는 200자 원고지 3매 분량이다. 1000매짜리 장편소설을 3매로 압축했달까. 압축된 이야기는 리드미컬한 시가 되었다. 김도언은 프로 이야기꾼이 프로 시인도 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이만하면 충분한 망명 자격이다.

  그의 아내는 소설가 김숨(38). 남편의 결연한 망명 사태에 이렇게 탄복했다 한다. “당신, 문학적 허파가 하나 더 생겼구나.” 시의 허파로, 그는 다시 숨쉬어라. 그의 시는 어떤 서사의 노래다. 시가 된 소설, 혹은 이야기가 지은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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